버튼은 무언가를 작동시킬때 누르거나 돌리는 스위치이다. 그런데 흔히들 말하는 '발작버튼'이 뭔가? 내가 발작하도록 자극을 주는 어떤 촉매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과민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 풍자해서 이른바 '발작버튼이 눌러졌다'고 웃으면서 희화화하는 것이다. 최근에 운전을 하면서, 신호 대기 중에 빨간불이길래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신호를 잠깐 못보았다. 그럴 때 뒷차들이 크락션을 누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그날 내 뒤에 있던 차는 크락션을 느끼기엔 5-10초 정도 길게 자지러지게 누르는 것이었다. 특이한 반응이었다. 또 다른 날은 낯선 장소로 운전하면서 직진과 우회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도로의 제일 오른쪽 가장 자리에 섰다. 뒤에 차량이 우회전을 하려던 모양인데, 그럴 때에도 보통 깜빡이를 키면서 크락션을 한번 누르면 앞 차량이 비켜주던가 그대로 있던가 상황에 따라서 반응을 한다. 그런데 그날도 내 뒤에 있던 차는 무슨 큰 일이라도 난 듯이 크락션을 마찬가지로 길게 자지러지게 누르는 것이었다. 그날도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급한 일이 있을 수 있고 피해의식일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이 지나치게 분명한 사람일 수도 있고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배려는 아닌 것이고 자기 확신인 것이다. 자신은 그래도 된다는 명분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하였으니 나는 화를 낼 권리가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면서 발작 버튼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저 사람에게는 발작버튼이 눌러지게 하는 트리거가 되나보다 하고 말이다.
운전할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리는 다양하고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쩌다가 한번씩 경험하게 된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지나치게 분노하는 것일까? 왜 저렇게 평정심이 순식 간에 무너지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저 사람은 왜 갑자기 마음이 상해하는 것일까? 우리는 한번씩 의아해할 정도로 내가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고 타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요즘 젊은 이들 사이에서는 속된 말로 '긁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무언가에 긁히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처가 나고 스크레치가 생기듯이, 무언가에 마음이 상했다, 컴플렉스가 건들여졌다 등등의 부정적 의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발작버튼이 눌러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나도 발작버튼이 눌려질 때가 있다. 나는 언제 분노하는가. 나 역시도 부당하게 나의 권리가 침해 당했다고 생각들 때 예민해지고 심하면 화를 낸다. 그 이면에는 예전에 유사한 피해를 봤던 억울함에 대한 분노가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론 같은 피해를 또 당할까봐 하는 염려와 두려움이 있어서 예방차원에서 더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떨 때는 사람들 앞에 창피와 무시 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발작하는 것이 정당한가 생각해보았을 때, 나의 감정에는 충실하지만 타인에게는 또 다른 상처와 피해를 주는 폭력일 수도 있겠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내가 행하는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사람마다 컴플렉스도 있고 극복하지 못한 약점도 있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도 있다. 그렇기에 예민한 부분이 저마다 있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낮추시고 결국 우리는 만나주시고 복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일부러 주신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아닌가하고 말이다. 그러니 발작버튼이 눌러지는 것 같을 때에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 잠시 멈추고 감정을 자제시키며 이성적으로, 영적으로 한번 더 생각해보자. 그럴 때 감정적, 동물적으로 변하던 그 순간을, 나의 연약함을 느끼게 하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며 그러니 나는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붙드는 축복의 순간으로 우리는 전환할 수가 있다. 그럴 때 내가 한층 더 성숙해지고 깊어지고 확장되는 놀라운 기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던 발작버튼은 어쩌면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순종훈련버튼, 나의 유한한 한계를 인식시켜주는 자아성찰버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할렐루야!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 3:4-6)"
* 미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최준혁 목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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